체리 고목을 오르다.

Posted 2009/07/02 17:46
'가내수공' 체리 수확단의 수확일지


사다리에 올라 체리따는 모습들.

▲ 사다리에 올라 체리따는 모습들. 2009 ⓒ 김미수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독일에는 집에 과수가 있는데도 직접 수확하기가 귀찮거나, 연로한 나이 등의 이유로 과일이 바닥에 떨어져 썩도록 그냥 두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산책을 하다가 그런 나무를 볼 때면 정말 아깝고 안타깝다.

그래서
'그렇게 방치할 바에야 우리가 갖다 먹어도 되는지 집주인에게 한번 물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다가도
'아는 사람도 아닌데 거절하면 어떡하나, 바빠서 수확시기를 놓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저런 염려에 선뜻 물어보지 못하곤 한다.

얼마 전엔 남편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체리가 길가 여기저기에 잔뜩 떨어져 있는 집을 발견했다. 올려다본 바로 10m는 족히 넘을 고목이었다.
'아까운 체리, 주인이 우리더러 수확해 가라고 하면 좋겠네' 싶었지만 우리끼리 얘기만 하고 그 집을 지나쳐 왔다.

며칠 뒤 이른 아침, 시 이모부님이 오셨다. 웬일인가 했더니 이웃집 정원에 큰 체리나무가 있는데 주인에게 허락을 얻었다며 시간이 되면 같이 체리를 따러 가자고 하셨다. 체리를 무척 좋아하는 우리 식구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흔쾌히 사다리와 양동이 등을 챙겨 들고 따라나섰다.
도착해보니, 엊그제 산책하며 지나친 바로 그 집이었다.


'저이, 진짜 사람이야 원숭이야'

체리따는 남편

▲ 원숭이를 방불케하며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다니며 남편이 체리를 따고 있다. 하단 중앙, 10 리터들이 녹색 양동이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2009 ⓒ 김미수

'우와 이런 우연이...' '빨리 사다리부터 연결하자.' 체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를 보고 신이 나서 재빨리 수확 준비를 했다. 워낙에 큰 고목이라 나무에 매달린 체리열매는 사다리 없이는 수확하기 불가능한 높이에 있었다.

70이 넘은 연세에도 혈기 왕성하신 아버님과 남편이 사다리를 타고 나무 위로 올라가 체리를 수확했다. 이모부님과 나는 그럴 재간은 없어 그 밑에 낮은 사다리를 놓고 체리를 땄다.

이쪽에서 또 다른 쪽으로 옮겨 가며 부지런히 체리를 따다 보니 아래쪽에는 더이상 체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내려와 잠깐 숨을 돌리다가, '나도 좀 높이 올라가서 체리를 따 볼까? 내친 김에 한번 해보지 뭐'하는 생각을 했다. 이내 겁도 없이 7m가 다 되는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우와 여긴 체리가 정말 많이 달려 있네.'


따고 또 따고… 가지고 올라간 양동이가 거의 다 찰 무렵, '뭐 높은데 올라오는 것도 별거 아니네' 하면서 별 생각 없이 밑을 내려다봤다. 그런데 그 순간 오금이 저리면서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사다리를 내려와 한숨 돌리는데, 아버님과 남편은 아직도 나무 위에 있다. 한 두 번 정도 사다리 위치를 바꾸려고 내려온 것 외에는 한나절 내내 지칠 줄 모르고 계속 그 자리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타고 놀았다더니, 참 경험이란 게 우습게 볼 것이 아니네.' 이런 내 생각을 빤히 들여다보기나 한 듯, 원숭이가 나무 타듯이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다니며 체리를 따는 남편. '저이, 진짜 사람이야 원숭이야?'

사다리에서 내려다본 모습

▲ 아찔한 고공에서의 기억.7m가 다되는 사다리에 오르는 것도 별거 아니라며 별 생각없이 밑을 내려다 본 순간, 오금이 저리면서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2009 ⓒ 김미수



체리 주스 생각에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10리터 양동이 가득한 체리를 받고 있는 이모부님

▲ 밧줄로 묶어 지상으로 내려보낸 양동이를 이모부님이 받고 있다. 10리터 양동이가 그새 가득찼다. 2009 ⓒ 김미수


체리나무 주인댁에 양동이 하나 가득 드리고 이모네와 나누고도 4 양동이나 남았다. 이만하면 체리를 질리도록 먹고도 남겠다며 모두들 함박 웃음이다. 한나절을 줄곧 체리 따는데 매달려 있느라 좀 피곤하기도 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니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한 번에 다 먹지 못하니, 좋은 것은 지하에 두고 생으로 먹고 나머지는 손질해서 주스나 쨈을 만들어 저장을 할거다. 그럼 이것들이 올해 긴 겨울을 나는데 중요한 비타민 공급원이 되겠지. 올겨울 난로 가에 앉아 따뜻한 체리 주스 한잔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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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홍옥, 아오리 사과.
가만 떠올려 보니,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먹어봤던 사과의 종류가 고작 세 네가지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전세계에는 2천여종의 사과가 존재한다는데, 시장에는 상품성, 수익성 등의 이유를 들어 아주 제한된 가짓수의 사과들만 유통되고 있다. 독일의 시장에는 우리 나라 보다는 조금 더 많은 종류의 사과가 판매되고 있긴 하지만 역시나 제한적이긴 마찬가지다.
 
▲ 두 세 그루 함께 있는 길가의 사과나무. 2008 ⓒ 김미수

▲ 두 세 그루 함께 있는 길가의 사과나무. 2008 ⓒ 김미수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이곳 Gerbach에는 여기 저기(길가, 밭가 등등) 과일 나무, 특히 사과 나무가 많다. 비단 우리마을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근의 다른 마을들도 둘러보면 다들 비슷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확하는 사람이 없어 사과가 땅에 떨어져 썩어나고 있다.
예전에 살던 베를린 근처 도시 Eberswalde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얼마전에 통화한 지인의 말로는 그 분 동네도 마찬가지란다. 심지어 지인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자기네 텃밭의 사과도 수확하지 않아 썩게 두거나, 가축의 먹이로 준다면서 너무 안타깝다고 한다.

▲ 수확하지 않아 바닥에 떨어져 썩어가고 있는 사과들. 2008 ⓒ 김미수

▲ 수확하지 않아 바닥에 떨어져 썩어가고 있는 사과들. 2008 ⓒ 김미수


몇 년 전엔가 청계천에 심은 사과 나무의 사과를 밤사이 누군가 몽땅 도확(盜攫)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때마침 그 해가 사과 값이 비쌌던지, 누군가는 나무에 달린 싱싱하고 값 나가는 사과가 탐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 기사를 떠올리고 지천에 떨어져 있는 사과를 보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썩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 보니 '사과 값이 우리나라처럼 비싸도 이곳 사람들이 사과를 이렇게 썩도록 내버려 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도 상대적으로 비싼 호두같은 것들은 기다릴 새도 없이 너나할 것 없이 다들 수확해 버리니 말이다.

▲ 나무 위에 탐스럽게 달린 사과들. 2008 ⓒ 김미수

▲ 탐스럽게 달린 사과들. 2008 ⓒ 김미수

안타깝게도 싸고 흔한 것들은 그것이 가진 본래의 가치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의 사과처럼 말이다.
사과는 비타민, 섬유소가 풍부하고, 보관도 용이해 두고 두고 특히 겨우내 저장해 놓고 먹을 수있는 사랑스런 과일이다. 영어 속담에 하루 한알 사과를 먹는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독일의 농부들은 소농이라고 해도 대부분 최소 십 헥타르에서 많게는 몇 백, 몇 천 헥타르나 되는 농지를 경작하기 때문에-말하자면 대량생산- 사과 뿐만 아닌, 다른 농산물 가격도 싼 편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은 허리를 숙여 봉지에, 바구니에 사과를 주워 담는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을 치르는 대신, 자동차를 타고 마트에가서 진열대에 놓인 사과 한 팩을 골라 장 바구니(쇼핑카트)에 담아 넣는 것을 더 선호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과를 언제까지나 썩게 둘지 두고 볼 문제이다. 오일 파동 등으로 비료, 농기구용 연료비 등의 가격이 계속 치솟는다면, 당연히 농산물 전반의 가격도 치솟될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이런 현상은 시작되었고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 끝이 어디인지,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언젠가 때가 되면 이곳 사람들도 사방 천지인 사과 나무에 감사하고 또 수확하게 되지 않을까.
그때까지 당분간 이곳 사과는 우리 가족 독차지가 될 것 같다. 우리 식구 먹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수확한 것보다 떨어진 채 그대로 둔 사과들이 훨씬 많긴 하지만.

 ▲ 비슷한 듯하면서도 모양도 빛깔도 다들 조금씩 다 다른 사과들. 2008 ⓒ 김미수

▲ 비슷한 듯하면서도 모양도 빛깔도 다들 조금씩 다 다른 사과들. 2008 ⓒ 김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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