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나른한 오후 남편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다



"더이상 못 참겠어, 이젠정말 머리를 잘라야 할 것 같아. 머리가 기니까 더 빨리 지저분해지고, 더러움도더 잘 타는 것 같아. 머리 감는데, 샴푸랑 물도 더 드는 것 같고.."

 

이에 나는 '그래봤자, 짧은 컷트머리인데, 무슨....... 뭐가 더 많이 든다는거야...'라고속으로만 생각하며 비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한국말에 야한 생각을 자주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 말이 있어."

 

"뭐야? 그거 진짜야?"

 

"아니 그런 말이 있다고......."

 

그렇게 남편을 한바탕 놀리고 생각해보니, 남편 머리를 자른지도 벌써 한달 반이 넘어간다. 곱슬이라 머리가 자란 것이 아주 도드라져 보이진 않지만, 옆머리와 뒷머리가벌써 웃자라 별로 단정치 못해 보이기는 했다.

 

'그래, 오랫만에 머리 자르는솜씨 좀 연마해 보자.'

 

머리 자르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

▲머리 자르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 길었던 머리를 깨끗하게 자르고 나니, 남편 머리통이 햇 도토리 마냥 이쁘다. ⓒ 김미수


리 자르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 막 딴 햇도토리 같은 남편 머리통

나른한 어느 오후, 욕실에 자리를 마련해 오랫만에 남편 머리를 잘랐다.

뾰족한 남편 정수리 부터 시작해 옆머리, 그리고 뒷머리 순으로 길이를 맞춰 잘라 나갔다. 이때, 자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른머리 길이가 위 아래 양옆이 같게 사방으로맞춰가며 자른다. 이는 처음 남편머리를 자를 때 시어머니께서 알려주신, 머리를쉽게 자르는 요령이다. 근데, 이 방법은 곱슬머리에게만 해당될 것 같다. 한국인 특유의 빳빳한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을 이렇게 잘라 놓았다간, 아마그 머리통에 대고 고슴도치가 형님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시어머니께서 남편 머리를 잘라주셨는데,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로 이제는 내 담당이되었다.

혹시 내가 전직 미용사가 아니냐고? 아니, 이제껏 어디서 머리자르는 법을 따로 배운적은 없다. 다만, 한국을 떠나올때 준비해 온비장의 무기를 여지껏 믿어왔을 뿐. 남편은 우리가 연애할때부터 결혼하면 자기 머리는 내가 잘라줘야 한다며은근한 압력을 담은 부탁을 자주 했었다. 그래서, 자연히 미용가위는독일로 이사면서 내가 챙겨가야할 품목 1순위권에 속했고, 떠나기 전나는 남대문 미용도매상가에서 '3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준전문가용미용가위를 샀다.

 

남편 머리를 내가 자르기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하다보니 균형이 맞질 않아, 자르다 자르다 나중에는 군입대를앞둔 사람의 머리처럼 '거의 까까머리'로 만든 적도 있었다. 물론 머리를 밀때 흔히 쓰는 일명 바리깡이라는 머리자르는 기계가 아닌, 온전히미용 가위 하나만을 사용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것도 1시간 반이상이 걸려서.

지금은 크게 흠잡을 데 없이 곧잘 자르곤 하지만, 머리 자르는데 자신감이 붙어서 이젠 아주 잘자른다고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자르는 데 걸리는 시간도 꽤 길어서 보통 한 40분은 걸린다..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외숙모 말로는 곱슬머리 자르는 것은 일도 아니란다. 물론 곱슬인 남편 머리를 잘라놓고보면, 이리저리 컬이 있는 머리카락 덕에, 웬만해선은 괜찮게 보이긴한다. 층만 지지 않게 깎는다면.

다행히 남편이 그다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내가 자기 머리를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 놓지 않는 한, 보통 내게 감사해하고 만족해 한다.

 

나를 도와주는 도구들

▲나를 도와주는 도구들- 왼쪽부터 마지막 갈무리를 위한 면도칼, 한국에서 장만해온 일반 미용가위, 선물받은 솎음 미용가위, 빗 ⓒ 김미수


내가 사용하고 있는 미용도구는 준전문가용 일반 미용가위, 전문가용 솎음가위, 납작빗, 면도칼 그리고 머리 자를때 몸에 두르는 보호수건- 이렇게 다섯 가지다.

솎음가위는 작년에 한국에 다니러 갔을때 외숙모께서 주신 선물로 써보니 참 유용하다. 일반 가위로 머리를대충 길이 맞춰 잘라 놓고 이 솎음가위로 끝을 조금씩 자르면서 다듬어주면 자르고 난 후 머리카락이 한결 자연스러워 보인다. 면도칼은 마지막에 목 위의 뒷머리와 구렛나루를 깔끔하게 다듬는데 사용한다.

 

 

거의 마무리 단계로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는데, 어느새 깜박 잠이 들었는지 남편의 고개가 살짝살짝 앞으로숙여진다. 깨울까 하다가, 그 반동이 그리 크진 않아 그대로 뒀다. 외려 혹시 잠이 깰까봐 내 손길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누군가 내 머리를 잘라줄때 가끔씩 몰려오는 졸음이 얼마나 달콤한지 나도 알고 있다. 미용실에서 그러고 있자면, 좀 민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떠랴 지금은 우리집인걸.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도 이 사람은 내가 자기 머리를 잘라주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이럴땐 내가 기계없이 가위로만 머리를 잘라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윙윙대는 머리자르는 기계를사용했다면, 아마 남편이 이리 쉽게 잠에 빠져들지는 못했겠지.

 

자르고 난 머리카락

▲ 자르고 난 머리카락- 신문지에 잘 모았다가 퇴비 만드는데 보태준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머리카락 역시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김미수

보통 나는 머리자르는 기계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기계를 쓰면 아마 머리 자르는 시간이 좀 더 짧아지지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가위질을 고수하는 이유는, 손으로남편 머리칼을 손에 쥐어가며 슥슥 잘라가는 과정이 나름대로 재미있어서 이 즐거움을 기계에게 내어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순식간에 드르르 잘라지는 기계를 사용하다 잘못해서 남편 머리를 또 '거의까까머리'로 만들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 됐다! 어디 보자.. 마음에 들어?"

 

"에이...그건 머리감고 말리고난 다음에 봐야 알지....... 고마워."

 

머리 잘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고 하지만, 평가는 나중에 꼼꼼히 보고 내리겠단 말이다.

 

근데 나는 척 보니 대략 감이 온다. 이번엔 꽤 잘 잘라졌다고. 기껏해야일년에 10번도 채 안 되게 그것도 남편 머리만을 잘라온 내 솜씨이긴 하지만 말이다.

 

머리를 깎아 놓고 보니, 막 딴 햇도토리 같은게 남편 머리통이 참 이쁘게 보인다. 그래서 머리를 감는 남편 등 뒤로 한 마디 해 줬다. 


"에고, 당신 머리 새로 자르니까, 새 (도토리) 신랑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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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길을 잘못 들어 예기치 않게 중고 옷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다. 카데디(KadeDi)라는 이 가게의 이름은 풀어쓰면 디아코니 백화점(Kaufhof der Diakonie)이란 뜻이다. 디아코니는 사회 저소득층과 실업자들의 자립을 돕고 학대 아동을 돕는 등의 복지, 보건 분야를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독교 계열의 사회단체다.
 

 카데디(KadeDi) 베젤(Wesel) 점

▲ 카데디(KadeDi) 베젤(Wesel) 점- 카데디는 디아코니 백화점이란 뜻의 중고용품 가게다. ⓒ 김미수


생태적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한 이후로는, 한국에서도 새 옷을 거의 사 입지 않았다. 한 번은 군을 제대하고 복학한 동기 남자애에게서 "니 패션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동기 애를 마주친 시점에서 거슬러 올라간 2년 전에, 꽤 오랜만에 사 입었던 새 옷을 보고 같이 수업을 듣던 학과 애들이 나름 환호를 해줬던 기억이 있다(내가 너무 오랜만에 새 옷을 입고 나타나서 그랬는지?). 공교롭게도 복학한 동기 애를 마주쳤을 때 입고 있었던 티셔츠가 2년 전 바로 그 옷이었다.

독일에서도 한동안은 옷 구매 없이 살다가 남편 졸업 후 정장 스타일의 옷이 필요해 베를린을 갔었다. 베를린에는 후마나(Humana)라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매장이 꽤 여러 곳 있다. 물론 수익금을 세계 빈국을 돕는 사업에 사용하는 후마나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옥스팜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매장이나 일반 헌 옷가게는 많이 있다. 하지만, 가격이나 규모면에 있어 그 어떤 곳도 후마나 매장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베를린의 후마나는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베를린 후마나 본점은 일반 쇼핑몰 못지않은 4층이나 되는 상당한 규모의 매장이다. 그런 곳에서 필요한 옷들을 2년 전에 구입하고, 여태까지 별 소비 없이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시댁이 있는 베젤(Wesel)에서 비슷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중고 매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름 값하는 중고용품 백화점 카데디 매장

 

카데디 부엌용품 코너 매장 안

▲ 카데디 부엌용품 코너- 매장 안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 김미수


들어가 보니 매장은 400제곱미터로 상당히 넓었다. 베젤 점은 뒤스부르크(Duisburg)점의 3번째 지점으로 지난 2008년 8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 뒤스부르크 본점과 근처 2개의 지점- 이렇게 3개의 매장이 아직은 독일 내에서 유일한 디아코니 중고 가게라고 베젤 점 지점장이 귀띔해 줬다.

카데디 매장은 다음 두 가지 사안을 중점에 두고 설립이 되었다고 한다. 첫째는 시민으로부터, 시민을 위한(von den Burgern, fuer die Burger). 둘째는 실업자인 시민에게 일자리의 기회 제공. 카데디 매장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물품은 시민의 기증을 받은 것들인데(시민으로부터), 이것들을 종류별로 잘 정리해 저렴한 가격에 시민에게 판매하고 있다(시민을 위한).

 

카데디에는 점원이 여러 명의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비교적 장기적인 일자리를 제공받고 있다고 한다. 카데디는 독일 노동청(Arbeitsagentur)과의 협력을 통해, 장기 실업자들을 위한 아베엠 (ABM: Arbeitsbeschaffungsmaßnahme, 1년 이상의 기간으로 제공되는 장기 실업자를 위한 인턴제도 같은 것.), 1.5 유로 일자리(실업자금을 받는 실업자들을 위한 미니 직업) 등을 제공한다.

 

이러한 일자리를 통한 일차적인 직업 경험을 제공해, 실업자들이 직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점원들의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수익금은 모두 카데디의 모체 격인 디아코니로 전해져, 디아코니의 다른 사회 복지 사업을 하는 데 쓰인다.
 

주력 상품인 옷과 관련 액세서리

▲ 주력 상품인 옷과 관련 액세서리- 오른쪽엔 신발코너, 왼쪽에는 가전제품과 가구 코너, 백화점이란 그 이름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 김미수


이곳의 주력 상품은 옷, 그중에서도 단연 여성복으로 평상복에서 정장까지 골고루 갖춰졌다. 그 외에도 남성복·아이 옷·아기 옷·유모차 등의 아기 용품에 부엌용품 그리고 약간의 가구와 가전제품까지 별로 빠지는 것 없이 구색이 잘 맞춰져 있다. 매장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 품위 있게 차려입은 나이가 지긋하신 노부부, 젊은 아가씨 등등 (가난하고 후줄그레한 사람들만 중고 매장을 찾을 거라는 일부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다양한 계층의 손님들이 매장을 찾았다.

 

가격대도 후마나처럼 역시나 다양했다. 웬만한 셔츠나 바지 등은 4-7유로 이내면 살 수 있고, 20유로가 넘어가는 고가(?)의 상품은 대부분 겨울 외투가 차지하고 있었다. 판매되는 옷의 상표 종류도 이름 모를 상표에서 부터 중고가의 상표까지 다양했다.

나는 이곳에서 중저가 상표의 새 외투 한 벌 값도 안 되는 금액으로, 평소 갖고 싶었던 스타일의 긴치마·카디건·캐주얼한 재킷·셔츠 그리고 작은 액세서리까지 몽땅 살 수 있었다. 너무 과소비(지출 금액이 아닌, 사들인 옷가지 수를 생각할 때)를 한 것은 아닌가 싶어 약간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옷이 아주 마음에 들어 큰 마음 먹고 모두 사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중고 가게를 찾는 가장 큰 이유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카데디 같은 가게를 찾는다. 그런데 내게는 가격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생태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서다.

 

새 옷, 유행에 발 맞춰 철마다 사입어 줘야 하나?

 

옷 사는 게 생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론 상관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천연 소재인 면으로 만든 옷을 예를 들어 보자. 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화 솜이 필요하다. 목화 솜은 당연히 목화를 재배해서 얻어야 하고. 그런데 유기농이 아닌, 일반적인 대규모 단일 경작을 하는 목화는 병충해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엄청난 양의 농약이 살포되는데, 전 세계 목화 경작지에 뿌려지는 농약이 세계 농약 시장의 35%에 달한다고 한다. 농약사용으로 말미암은 환경오염과 농민들이 겪는 건강상의 문제 등을 구태여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농약이 얼마나 해로운지 다들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위키피디아, Baumwollen, Anbau und Ökologie편)

 

그뿐만 아니라, 알록달록 아름다운 무늬와 색을 찍어내기 위한 화학 염색작업은 그 과정에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데다가, 이 과정에서 나오는 하수는 오염의 정도가 꽤 심각하다. 그리고 많은 옷 공장들은 대부분 인건비가 싼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에 많은데,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저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에 따른 노동착취와 아동 노동이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점점 주기가 짧아지는 유행에 따른, 한철 입고 버리는 저가의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옷들이 환경문제로 대두하기도 했다. (한겨레신문, 한두 번 입고 버리는 '스트리트 패션' 환경오염 주범)


옷 하나를 집어 들고 따져보니, 범세계적인 농업, 환경, 사회 문제가 줄줄이 딸려 나온다. 면 옷 하나에 세계화의 다양한 문제들이 들어 있다니, 참 재밌는(?) 세상이다. 이쯤되면 '범세계적인 온갖 문제 발생에 일조하는 새 옷을 내가 꼭 유행에 발 맞춰 철마다 사입어 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생태적인 소비의 다른 방법으로 유기농 면 옷을 사입을 수도 있다. 여력이 된다면. 이왕이면, 유기농+공정무역제품을 사는 게 좋겠다. 내 몸만을 생각한다면, 유기농 면 제품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빈국의 생산 노동자들까지 고려한다면 결론은 유기농+공정무역이다.

나만의 보물 찾기 놀이가 숨어 있는 여성복 코너

▲ 나만의 보물 찾기 놀이가 숨어 있는 여성복 코너- 색깔별, 치수별로 잘 정돈되어 있다. ⓒ 김미수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의 선택은?



광고에서 보니, 유기농 면에 천연 염색한 옷들이 수수하면서도 품위 있어 보이는 게 참 좋아 보이긴 했다. 천연 염색이라는데, 색이 어찌 그리 곱던지…. 그래도 나는  여전히 독일의 후마나, 카데디 같은 사회적인 중고가게를 고집한다. 내게 있어 중고 가게는 유행에 민감한 보통 새 옷가게가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많은 헌 옷들 가운데서 내가 원하는 옷을 찾아내고, 또 예기치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보물찾기 놀이가 숨겨진 곳. 카데디는 바로 그런 곳이다. 게다가 내 소비가 다른 이들을 돕고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보탬이 된다는데, 이런 곳을 마다할 이유가 있나.

 

아주 솔직한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아직은 고가인 공정무역 유기농 옷을 사입다간 내 가랑이가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실 내 가슴 한구석에 살짝 숨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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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공공도서관 벼룩시장을 다녀와서


시댁이 있는 베젤(Wesel)에 있는 공공도서관에서는 기증받은 책이나 오래된 책들을 모아 일년에 네번 벼룩시장을 연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모든 책들은 그 두께나, 컬러의 비중에 상관 없이 1 유로(약 1800원) 아니면 0.5 유로다.

독일 공공도서관 벼룩시장

▲ 판매되는 모든 책들은 1유로 아니면 0.5 유로. 맨 앞 중앙의 책꽂이에 '각각 0.5 유로 (je 0,50€)' 라고 쓰여있다.2009 ⓒ 김미수


'공공 도서관에서 여는 벼룩시장이라니...'
처음엔 참 낯설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우연찮게 시댁을 방문하는 동안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 겹치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가슴이 설레인다. 그것은 단돈 '1유로 이내'라는 초특가에 책을 살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벼룩시장에 가면 절판되어시중에선 구하기 어려울 법한 희귀한 책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한권이 갖는 절대적인 값어치는 별도로 하고 상대적인 가격만을 비교해 생각해 볼 때 요새 책값은 상당히 비싸다. 그렇기때문에, 사고 싶은 책들을 한번에 수십 권이 넘게 사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벼룩시장을 이용하면 관심가는분야의 여러 책들을 몇 십권씩 사도 웬만해선 몇 십유로 넘지 않는다. 또 살 책을 정해 놓고 서점에 가거나 인터넷으로 책을주문하는 것과 달리. 그곳에 가면 매번 생각지도 못한 책들을 만나게 되는 기쁨이 있다.

'이번엔 어떤 책들이 나와있을까.'
매번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내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을 '발견하러' 나는 그곳에 간다.


의자에 앉아 한권 한권 꼼꼼히

▲ 꼭 필요한 책만을 사기 위해 의자에 앉아 한권 한권 꼼꼼히 살펴 본다.2009 ⓒ 김미수

이번 도서관 벼룩시장도 때마침 시간이 맞아 남편과 함께 다녀 왔다.
늘 그랬듯이 문 여는 시간에 딱 맞춰 갔다. 나중에 책을 담아갈 커다란 빈 배낭을 내려놓고, 내 관심분야인 자연과 가든, 그리고 요리에 관한 책이 꽂혀있는 책꽂이를 먼저 쫙 훑는다. 그렇게 일단 대충 중요한 책들을 골라놓고 나서, 나머지 책꽂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둘러 본다. 혹시 흥미있는 다른 책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책을 다 고른 후에 책꽂이 옆에 놓인 작지만 안락한 의자에 앉아 한권 한권 꼼꼼히 살펴 본다. 정말 꼭 필요한 책만을 사기위해서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지만, 보통 제외되는 책들은 처음에 고른 책의 10% 이상을 넘지 않는다.

그렇게 매번 자가 확인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망설여지는 책들'을 놓고 한 번 더 함께 고민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르고, 골라도 매번 몇 십권 씩 사게 될 때가 많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유모차를 끈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들 부터 할아버지들까지.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저마다 설레임을 안고 찾아와 각자 발견한 책들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도 그렇게 책들을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곳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꽉 차있다. 둘이 나눠 담아도 각자의 배낭에 빽빽히 들어찬 책과 가슴 가득한 기쁨과 만족감으로 말이다.

독일 공공도서관 내 아이들 모습

▲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저마다 설레임을 안고 찾아온다.2009 ⓒ 김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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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yim3204.tistory.com BlogIcon 분홍별장미

    | 2009/07/09 15:33 | PERMALINK | EDIT | REPLY |

    저도 2년정도 도서관에서 일한적이 있어서..어느정도 감이 오네요..

    도서관에보면 지역 주민들이 이사를 갈때 헌책들을 많이 기부하는데..

    이게 마냥 좋은게 아니라 너무 헌책이라 정리할수도 없고.. 또 기증이라 버릴수도 없는데.. 이렇게 벼룩시장을 하면 좋을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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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협하는 비행기 여행

Posted 2009/06/17 10:12
-비행기 여행, 이대로도 좋은가.


하나, 한 번에 죽음까지 몰고가는 위험한 여정- 비행기 여행


오랫만의 고향 나들이를 마치고 며칠 전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길다면 길 수 있는 4년이란 시간 동안 한 번도 가족과 친구들을 보지 못했고 또 나름대로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이번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헬싱키를 경유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몸을 실은 후 내 결정에 대해 후회와 의심이들기 시작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비행기 안에서 - 특히 이,착륙을 할 때와 난기류로 인해 비행기가흔들릴 때마다, 내 몸은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또한, 옆에 앉은 남편을 잡은 내 손에는 매번 땀이 차 오르곤 했다. '비행기를처음 타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했지만, 4년 전 겪은 악몽같은 기억을 떠올리면 내 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전 독일로 가기 위해 내가 탄 비행기는 경유지인 타이페이에 한 번에착륙하지 못하고, 두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착륙을 했다. 처음에 착륙을 실패했을 때 만해도 함께 타고 있던 주위 사람들은마치 아무 것도 아니란 듯이 웃음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또 다시 비행기가 착륙에 실패하자, 탑승객들은 물론 승무원들까지 당황하는기색이 역력했다. 거대한 비행기가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췄다가 갑자기 위로 오르기를 몇 번 반복하는 동안, 나는 겨우 신음소리만한 외마디 비명 밖에 지를 수 없었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해 내가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기를 빌면서.

1초가10분 같던 그 시간, 정말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 속에서 살기 위해 내 스스로가 할 수 있는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기 탑승 후 알려주는 긴급 상황 대처요령들이-머리를 숙이고, 산소마스크나 구명조끼를 입는 방법등의,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비행기가 땅에 추락해 박살이 나면 그만인 것을.

끔찍한 경험으로 반쯤 넋 놓고 앉아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는 뼈아픈 반성을 했었다. '한 번의 위험만으로도 금세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비행기 여행을 나는 그동안 너무 가볍게 생각해 왔구나.' 라고.

▲ 비행기 창에서 내다본 풍경

▲ 비행기 창에서 내다본 풍경 -비행기 안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항상 흥미롭고 아름답다. 비행기 여행이 안고 있는 큰 위험에도 불구하고.2009 ⓒ 다니엘 피셔



둘, 생물종의 말살을 불러오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의 공신
- 비행기 여행


오랫만의 고향 나들이가 정말 오랫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다른 여러 이유도 있지만, 한 번의 비행기 여행이 환경에 끼치는 무시할 수 없는 악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헬싱키를 경유해 독일과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 여행으로 내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은 5560kg. 일년간 냉장고 사용으로 인해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이 100kg 이고, 중형차 정도의 자동차를 1년간 몰았을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2000kg인것을 감안하면, 몇 주간의 여행에 따른 결과 치곤 상당히 치명적인 양이다. 더군다나 지구에 크게 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이 일년에 한 사람당 3000kg 라고 하니, 난 단 몇 주 만에 벌써 2년 동안 배출해도 좋을이산화탄소량을 배출해 버린 셈이 되었다. 평소에 냉장고 사용을 하지 않는 등 가능하면 에너지가 적게 드는 생활을 하려던 그동안의노력들이 단 한 번의 비행기 여행으로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이 들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흔히들 온실가스 배출이나와는 무관하고, 대신 거대한 산업 단지들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즐거운 휴가를 위해 계획한 비행기여행으로도 엄청난 온실 가스가 배출되고, 그것이 야기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때아닌 폭우며,갑작스런 토네이도, 이상고온 현상 등-로 인해 생물들이 죽어가고, 심지어는 그로 인해 죽는 사람들도 있다는 연결고리를 인식하고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요새 사람들이 가격이 싸다고 단 며칠 간의 해외여행을 감행하는 모습은 어떤가. 어떤이들은 비행기 여행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인 양 쉽게 결정하고 떠나기도 하지만, 분명 비행기 여행은 잠깐 야외에 바람쐬러나가듯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삶의 '연결고리들'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결정과 행동에 조금 더 책임감이더해지지 않을까.


비행기 여행-정말 일상적인 것이 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독일로 돌아오는 길에 경유지인 헬싱키에서 집어든 유럽판 타임지에는 얼마전 실종된 에어 프랑스 비행기 447에 대한 얘기가 짧게 실려 있었다. 기사 중간에 붉은 색으로 적힌 '몇천 몇만 킬로를 짧은 시간에 여행하는 비행의 기적은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일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라는 요약문은 비행 여행에 관한 우리의 태도를 잘 지적하고 있었다.

"...대륙간 비행 여행의 역사는 불과 채 40년도 안 되는데,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있다....비행은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들고, 우리의 가능한 것에 대한 인지를 변화시켰으며,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었다.비극은 우리가 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정말 그러한 것인가 돌아보게 한다."
 < The Moment/ 2009년 6월 1일 파리>
2009년 6월 15일자 유럽판 타임지-VOL. 173, NO. 24 | 2009, 11쪽

세상에는 이미 거대한 비행 사고 등과 같은 비극이 많이 일어났고, 또 환경에 대한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믿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불편하다고 진실이 거짓이 되진 않는다.

조금만 마음을 더 열고 인식을 새롭게 해 보이지 않는 것도 보려고 노력해 보자. 결정에 앞서 내게 올 수 있는 불행이나, 혹은 내결정으로 인해 피해를 받을 지도 모를 다른 생명들을 생각해 보자. 당장 눈에 띄는 무슨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런것들이 쌓인다면 최소한 비극의 진행 속도를 조금 더 늦춰볼 수 있진 않을까.
우리 모두가 조금씩 달라진다면 말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계산기(Emissions Calculator)

독일의 아트모스페어(Atmosfair)라는 단체(Non-Profit-Organisation)에서는 비행기 여행시 발생하는 개개인의 온실가스 방출량에 대한 기부금을 받아개발 도상국의 생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는 개인이 발생시킨 온실가스를 생태 프로젝트 진행으로 절감시키자는 의도에서 비롯된것이다.

홈페이지의 ' 온실가스 배출량 계산기(Emissions Calculator)'라는 메뉴에 들어가면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해 개인당 편도 혹은 왕복 비행기 여행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계산할 수 있다.이때 냉장고나 자동차 사용에 따른 CO2 발생량 등이 함께 제시되어 계산된 CO2량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아트모스페어와 같은 단체들에 기부를 해 내가 방출한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노력을 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하지만, 이 곳의 안내글에도 나온것 처럼 충치를 때웠다고 그 이가 처음의 건강한 이가 되지 않듯이 비행기 여행으로 인한 환경오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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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ue2310.tistory.com BlogIcon 드자이너김군

    | 2009/06/19 18:21 | PERMALINK | EDIT | REPLY |

    음.. 이런건 생각도 못했는데.. 온실가스의 주범이었군요.비행기가..
    타고 놀러나 다닐줄 알았지.. 이런것도 생각해 본적이 없내요.
    그나저나 여행 잘 다녀 오셨다니 다행 입니다.^^

  2. Favicon of http://my-ecolife.net BlogIcon Soo^^

    | 2009/06/20 13:18 | PERMALINK | EDIT | REPLY |

    김군님께서 달아주신 게 제대로된 공식 첫 댓글이네요^^
    살다보면 별의 별일 겪게 되기도 하는데, 겪기 전에는 무덤덤하기 쉽죠..
    저도 4년전 아찔한 경험하기 전까지는 정말 별 생각없이 비행기 타고 다녔었어요.

    여튼 댓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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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봉지 바나나가 준 교훈

Posted 2009/01/07 00:17
좀 더 소박한 삶을 사는 새해가 되길 바라며


달콤한 바나나의 유혹

우리의 설날처럼 큰명절로 여기는 독일의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시댁에 온 후로 벌써 여러날이 지났다. 크리스마스즈음에 가족들과 함께 장을 보러간 마트에서 그 날 따라 유난히 바나나가 눈에 띄였다. 바나나가 있는 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그 주위를 맴돌다가 남편에게 넌지시,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그런데... (파티 분위기도 낼겸 평소에는 먹지 않는 이국적 과일인) 바나나 한 번 사 먹어볼까? 유기농에 '공정무역(fair trade)' 제품인데." 하고 물어 봤다.
그런 나를 보고 살며시 웃으면서 그는
"나는 별로 생각이 없지만, 먹고 싶으면 (장바구니에) 담자." 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동조해주기를 내심 바랐던 나는 그 말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뭔가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그래서인지 장을 보는 내내 '공정무역제품이니까 괜찮아, 뭐 자주 먹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아니 어쩌다도 아닌, 채식을 시작한이후로 처음이자, 또 (아마도) 마지막으로 사려는 건데..'라는 말로 나는 내 스스로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결국 '유기농공정무역' 바나나 한 봉지를 샀다.


유기농 공정무역 바나나

유기농 공정무역 바나나

▲ 슈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는 유기농 공정무역 바나나 2009 ⓒ 김미수

오랫만에 먹는 바나나는 너무 맛있었다. 물론 그동안 초대받은 모임이나 생일 파티 같은 곳에서 한 두번 맛을 본 적도 있긴했지만, 직접 산 바나나를 먹는 것은 거의 7,8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유인 즉, 생태적인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최소한의 것을 실천하기 위해 채식인이 되었으면서,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데다(장거리 운송을 위한 에너지낭비 문제) 덤으로농약까지 듬뿍 뿌려진(생산된 나라의 토양과 수질 등 환경오염 문제) 수입 과일을 사 먹는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에 와보니 예전에 한국에선 보지 못한 '유기농 공정무역 바나나'가 있었다. 그동안은 생태적인이유를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유기농과 공정무역제품이라 하더라도, 지역 농산문이 아닌 이상, 유통에 드는 에너지 낭비의 문제) 그비싼 가격 덕분에 유기농 가게에서 파는 바나나는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고맙게도 사먹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기에 별 어려움이없었다. 그런데, 이 유기농 공정무역 바나나가 얼마 전부터는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슈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산 바나나를 조금이라도 남편이 같이 먹어주기를 기대했지만, 예상대로 물론 남편은 단 한 개, 아니 단 한 입의 바나나도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단호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라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때문에 더욱 나 혼자만 유혹을이기지 못하고 나쁜 짓을 저지른 양 주눅이 들었다. 어쨌건 바나나를 다 먹고 난 후, 나는 이 바나나 한 봉지로 내 사치가 마무리졌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문제의 시작, 바나나 한 봉지

내가 바나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서는 한 봉지를 더 사오셨다. 그 때 나는 '바나나 한 봉지를사먹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바나나같은 수입 과일을 이런 저런 이유로 먹고 싶지 않고, 먹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되도록이면자제하고 싶다'라는 입장을 말씀드려야 하나 어쩌나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백번의 말보다 한번의 행동이 낫다고, 이왕사 주신거니 조금 먹기는 하되, 다 먹어치우지 않고 시댁을 떠나기 전까지 바나나를 계속 남겨두면, 나를 위해 더 이상 유기농 공정무역바나나를 사지 않으실거라는 생각에 일부러 바나나를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왠걸, 독일인임에도 마치 한국의 엄마들처럼 자식들을살뜰히 챙기시는 어머니께선 바나나만 보면 내가 생각나셨던지, 그 뒤로도 바나나를 2봉지나 더 사오셨다.
결국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 마음에 상처를 조금 드릴 것을 감수하고 내 입장을 말씀드렸다.

채식인이었고, 남편인 스콧 니어링과 함께 버몬트의 숲속에서 오랫동안 자급자족하는 소박한 삶을 살았던 헬렌 니어링은"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에서 스스로가 녹색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사람인지라 언제나 한결같이 일관성있게실천하지 못하고, 가끔씩은 스스로에게 관대해 질 때도 있다고 고백을 하였다. 처음 바나나를 살 때 이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말을 떠올리며 '나도 인간이니까 가끔 이렇수도 있는 거지..(하물며 헬렌 니어링같은이도 그랬다는데..)'하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했었다. 그런데, 그 작은 시작이 내가 계획하고 원했던 대로 단 한 봉지에서 끝나지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바나나를 통해 본 내 안의 욕망과 신념의 충돌

그런데 뼈아픈 경험을 교훈으로 삼고 남기기 위해 글을 쓰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이런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나.'
아니, 내 안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몇 년을 겪어온지라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나는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어머니가 또 다른 바나나 한 봉지를 더 사오셨을때 나는 내 입장을 명확하게 말씀드려야 했다.
지금다시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사오신 그 바나나 봉지를 보면서..한 편으론 '아니 이럴수가..'하고 놀랐지만(혹은 놀라는 척했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잘 익어 달콤한 바나나의 맛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군침을 흘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지않았었나하는 의문이 든다.
이에 나는 그런게 아니라고 단언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나는 정말 나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인지라' 약간의 유혹에 스스로가 지키고픈 신념을 조금은 벗어날 때도 있지만,그런 것도 한 번이면 족하고, 또 내 의지대로 욕구를 제어할 수도 있는, 여전히 '상당히 생태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끝까지면죄부를 쥐어 주고 내가 만들어 놓은, 혹은 내가 원하는 그럴 듯한 모습으로 내 자신을 포장해 왔던 것은아닐까.

이런 일이 생기고 보니 처음부터 슈퍼마켓에서 좀 더 싸다고 덜컥 상품을 골라 집기 보다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아니면 스스로에게 다른 대안을 제안해 볼 순 없었을까 반성을 하게 되었다. 바나나를 정말 먹고 싶었다면 조금 맛이 다르지만, 그리고 또 조금 더 비쌀지도 모르지만 공정무역 가게(Weltladen)에서 파는 말린 유기농 공정무역 바나나나 칩 같은 것을 대신 사 먹는 것은 어때?' 라고.



생 바나나 vs. 건조 바나나

보통 건조 바나나는 대부분의 생산과정을 제 3세계에서 마친 후 교역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제 3세계 현지 노동자들의 자립을 돕고, 따라서 그들이 최대한 많은 이윤을 얻는 것이 공정무역의 큰 목표 중 하나이니, 이런 과정은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생 바나나만 수출하는 것 보다, 가공, 포장까지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일자리와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건조 바나나가 생 바나나보다 조금 더 생태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생 바나나 보다 말린 바나나칩이가공과 포장의 측면에서 에너지가 더 들겠지만, 반면 그 무게와 부피 때문에 유통과 저장에 드는 에너지는 생 바나나가 현저히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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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트리, 소보루, 마들렌, 초코칩 쿠키.
듣기만 해도 군침이 저절로 도는 간식거리들이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멜라민 파동 여파로 이런 제품들을 사먹는 대신,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 인터넷 기사에서 홈베이킹(집에서 빵 만들기)의 위험성에 대한 기사와 로컬푸드가 대안(지역 산물이 대안)이라는 두 기사를 주의깊게 보았다.
평소 내 생각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많은 이 두 기사들에서 영감을 얻어,
서울 방산시장에서 파는 국적모를 홈베이킹 재료들 대신 이 시대의 대안이라는 로컬재료를 사용한 맛있고 건강한 간식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나는 더 이상 케익이나 파이를 굽지 않는다.(그 이유는 조금 덜 뻔뻔한 악마케익이 준 교훈을 참조.)
아래의 빵을 우리(나와 남편)는 간식이라기보다 식사로 먹는다.
하루 한 끼 따뜻한 음식을 조리하는 독일의 식습관 때문에 조석으로 그간 빵을 먹어 와 빵을 끊기 힘든 남편을 위해 나는 가끔 빵을 굽는다.

나는 까다롭고 정확한 요리사가 아니고 헬렌 니어링처럼 감으로 설렁설렁 요리를 하지만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서 자주 굽지 않는 빵의 경우 감만으론 아직 그다지 정확한 계량을 맞추기 힘들다. 그래서 그동안 구워서 성공한 빵을 기준으로 나만의 레시피를 적어 봤다.
기본 레시피-곡물가루와 물의 비율 생이스트 녹이는 방법 등은 시댁에서 배운것을 바탕으로 응용해 사용했다.
참고로 나는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레시피에 나온 많은 재료들을 내 주방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참고하시는 분들도 내 레시피를 말 그대로 참고로만 하고, 꼭 그 재료가 없다면 집에 있는 재료로 대체해 사용하기를 권장한다.
 
먼저 굽기에 대한 내 지론

-주위에서 나는 재료로
-건강하게
-그리고 에너지를 효율성있게-한번에 많이 굽기(절대 500g짜리 빵 하나를 굽기위해 오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세가지 이다.

나는 빵을 구울때 완전 통곡물가루만을 사용하는데, 그러면 정제된 흰밀가루를 섞어 쓰는 것보다 반죽이 좀 무거워서 빵이 많이 부풀지 않는다.


새싹 통곡물 빵(700g정도의 빵)
재료
*새싹을 틔운 통곡물 1컵: 메밀, 통밀, 통호밀 1cm좀 못되게 새싹이 난 것들로 비슷하게 섞어 200ml컵 한컵정도(통밀, 메밀, 보리싹도 괜찮은 조합이라 생각한다. 한국에는 *통호밀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새싹 내는 방법은 글 마지막 박스를 참조)
*통밀가루 300-400g
*소금 찻숟가락 절반 정도
*견과류: 참깨,린넨씨,해바라기씨 한주먹씩(잣, 호두나 호박씨 정 없으면 그냥 구하기 쉬운 참깨만 넣어도 좋다. 들깨도 좋으나 향이 강하니 조금만 넣고 상태를 보도록!)
*양념용 말린허브: 작년에 말려둔 오레가노, 타임, 야생허브등을 각각 3-4 숟가락씩 넣었다.(말린쑥을 손으로 비비거나, 혹 그 가루, 녹차가루도 좋고, 다시마 가루나 버섯가루도 무방할 것 같다. 다만 그 조합을 잘 살피시길! )
*양념용 씨앗: 유기농 가게에서산 쿠민, 넬켄 등 몇몇 향이 강한 인도 향신료 씨앗을 사발절구에 찻숟가락으로 한수저씩 넣고 약간 빻아서 넣어 줬다.
*식물성 기름 2 숟가락: 독일에서 흔하고 다른 기름보다 저렴한 해바라기씨유(油)를 넣었지만 한국이라면 단연 국산 현미유를 사용하겠다.
*생이스트 절반(여기선 이스트를 한 조각에 45g짜리를 포장해서 판다.) 약 20g정도
*미지근한 물(약 30도씨) 100ml
*설탕무 시럽 1스푼(조청으로 대체 가능)


만들기
1.이스트 준비
미지근한 물에 시럽이나 조청 1스푼을 넣고 잘 녹인다.(물이 너무 뜨거우면 이스트가 사멸할 위험이 있으니 주의바람!)
이에 이스트를 넣고 이스트덩어리가 풀어지도록 나이프나 숟가락으로 저어준다. 그리고 기다리면 3분 정도 지나 이스트가 부푼다.

2. 새싹 준비
새싹을 믹서에 넣고 1의 준비된 이스트 물을 부어 함께 잘 갈아준다.

3. 반죽하기
잘 갈아진 2를 큰 양푼에 넣고(플라스틱 동그란 양푼이 좋다. 스텐리스는 반죽이 그릇에 들러 붙어 잘 안 떨어지기 때문에 밀가루를제외한 모든 재료-견과류, 양념용 씨앗 허브, 소금, 기름 등을 넣고 젓는다.
여기에 밀가루를 한번에 다 넣지 말고 세 네 차례 나누어 넣어가며 반죽을 한다. 손으로 치대도 좋고 반죽기로 반죽을 해도 좋다. 다만 손으로 반죽을 할때는 저어서 빡빡해 질 때까지 밀가루를 넣고 골고루 치대면서 반죽이 섞일때까지 치대다가 밀가루를 조금씩 더 넣고 하는 식으로 하면 반죽이 수월하다.

4. 발효
이렇게 잘 된 반죽을 동그랗게 모아서 그흣 중앙에 오게 해 놓고 위에 밀가루를 살짝 뿌려준다.(반죽이 부풀어 수건에 들러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건으로 양푼의 입구를 잘 감싸 따뜻한 곳에 놓는다. 나는 주로 침대에 이불속에 넣어놓고 날이 추운 날에는 이불하나를 더 꺼내거나 두터운 점퍼를 꺼내 한겹더 싸아 준다.
따뜻할 수록 발효가 잘되고 빨리 된다.
1시간쯤후에 반죽이 2배이상 부풀었으면 굽기를 시작하지만, 반죽이 별로 부풀지 않았으면 더따뜻하게 해주거나 두어시간 더 기다린다.

5. 모양만들기
부푼 반죽을 빵 모양틀에 넣어도 좋지만 이럴 경우 틀에 기름을 발라줘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있고 또 가끔씩 틀에서 빵이 잘 빠지지 않는 어려움을 익히 보아 왔기 때문에 나는 그냥 손으로 모양을 잡아 바로 굽는다.
위 분량의 반죽을 두개로 나눠서 둥글납짝 길죽하게 반죽을 하고 반죽이 놓여질 오븐 접시에 밀가루를 약간 뿌려서 들러붙지 않게 해 준다.
중요한 것은 이때 빵 반죽에 길게 일자로 칼집을 내든 사선으로 3개 정도 칼집을 내는 것인데, 모양은 마음대로, 다만 약 1m 깊이 정도로 꼭 칼집을 넣어준다. 그렇지 않으면 빵이 부풀어 오르면서 마른 땅이 갈라지듯 쩍쩍 갈라진다.

6. 굽기
10분정도 예열상태에서 2차 발효를 살짝 시켜준후 200도씨 정도에서 약 1시간 구워 준다.
오븐 아래에 철제 그릇에 물을 부어 함께 넣어 주는 것을 잊지 말자.(빵에 수분공급 목적)
시간이 되면 젓가락을 이용해 빵을 찍어보아 젓가락에 반죽이 묻어나면 아직 덜 구워진 것이니 좀더 구워야 한다.

7. 먹기
이 빵에 쨈을 발라먹거나 샐러드와 함께 먹거나 토마토를 얇게 링으로 썬것에 소금, 후추, 부추나 양파 다져올린 것과 함께 먹으면 맛이 좋다.


8. 응용
빵에 단맛을 가미하고 싶으면 조청을 2-3 숟가락 첨가하고, 건포도나(대부분 수입산이므로 대신에 가을철에 사놓았다가 냉동실에 보관하면 1년 내내 사용 가능한 곶감 사용권장) 곶감을 잘게 썰어 반죽에 함께 넣어도 좋다.
 

새싹 내는 방법

하루 정도 각각의 곡물을 밥그릇이나 유리그릇에 불렸다가 물을 따라내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깨끗한 물로 헹궈서 물을 따라준다.날파리 등이 꼬이지 않도록 천으로 덮어 놓는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1cm정도의 싹이 자란다.
새싹내는 기계가 있으면 수월하다.



글을 쓸 요량으로 요리를 하지 않아서 찍어둔 사진이 없다.
다음번 빵을 구울때 사진을 찍어 글의 내용을 보충하도록 하겠다.
글을 올리면서 영감을 받은 두 기사의 링크를 걸려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포털에  올라온 글은 다음 날이면 찾을 수 없다더니.. 그말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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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조작 농작물, 그 유해성을 알고 있나


▲ 유전자 조작 옥수수 밭에 반대하는 가두시위  2006 ⓒ 김미수 & Daniel Fischer

지난 7월 마지막 주 주말,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에 있는 작은 마을 바딩엔(Badingen)에서는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긴드렉 벡(Gendreck-Weg, 유전자 조작 쓰레기는 사라져라!)'이라는 단체에서 주관한 행사인데, 올해로 두 돌을 맞았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

Bt 옥수수란?



이 곳 Badingen에 심은 옥수수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 중 Bt 옥수수이다. Bt란 독성을 내뿜는 'Bacillus thuringiensis'균의 약자로, Bt 옥수수는 별도의 농약 사용 없이 옥수수 스스로 해충을 죽일 목적으로 개발된 종자이다.

하지만 해충뿐만 아니라, 바람에 날린 옥수수 화분에 오염된 근처 다른 풀에서 서식하던 나비, 나방, 애벌레들까지 죽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Losey et al.1999)


이 단체는 해마다 유전자 조작 농작물을 심은 밭을 찾아 근처에서 캠핑을 하며 워크숍, 토론회를 연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일요일, 교회에서 유전자 조작 농작물에 반대하는 주제의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밭까지 가두시위를 한다. 그 다음 일정의 마지막이자 행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옥수수 밭에서 춤을(Tanz in den Mais!)'이라는 행사를 여는데,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우리의 건강마저 위협하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베어내는 것이다.

작년에는 소수의 참가자들만이 밭에 접근해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베어낼 수 있었다. 밭 근처에 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경찰이 경찰차, 입에서 보호대를 제거한 경찰견, 심지어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1000㎡ 크기의 옥수수 밭을 '청소'했고 그 중 80여 명이 연행됐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의 독성 때문이었을까. 옥수수를 베러 밭에 들어갔던 이들 중 몇몇은 밭에서 나온 후 알레르기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 길을 막아선 경찰차들을 배경으로 연주를 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 그룹 Lebenslaute
2006 ⓒ 김미수 & Daniel Fische

정말 밭을 깡그리 없앨 목적이라면 몰래 밤에 밭을 찾아 다 베어 버리는 게 쉽겠지만, 이 집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에게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 유해성 등을 널리 알리고 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있다.

일부에서는 긴드렉 벡과 참가자들을 싸잡아 '파괴자', 심지어는 '범죄자'라고까지 하며 비난하고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한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함께 온 아이부터 학생들, 타악기와 클래식 음악 연주 그룹, 양봉업자, 농부, 고령의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직업에 관계없이 '우리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 하나로 모인 참가자들뿐이다.


유전자 조작 농작물의 폐해

브란덴부르크주는 독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유기농 밭이 있다. 그리고 많은 농부들이 자신들의 지역을 'Gentechnik frei Land'(유전자 조작 금지 지역)로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또한 독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유전자 조작 농작물 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일반 농작물과 유전자 조작 농작물의 공존이란 양과 늑대를 한 곳에 모아 두고 공존 가능성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양봉업자 미햐엘 그롤름.
2006 ⓒ 김미수 & Daniel Fischer

유전자 조작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 농작물은 건강에 무해하며 일반 농작물과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환경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올해로 두해째 긴드렉 벡 패널로 참석하고, 행사 진행을 맡고 있기도 한 양봉업자 미햐엘 그롤름(Michael Grolm)은 "일반 농작물과 유전자 조작 농작물의 공존을 운운하는 것은 양과 늑대를 한 곳에 모아 두고 공존이 가능한가를 지켜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벌들은 최대 10km까지 날아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화분을 나르고 이를 통해 유전자 조작 농작물의 화분이 일반 농작물에 닿아 결국 모두 유전자 조작 농작물이 되고 만다. 벌뿐만 아닌 바람도 이런 현상을 확산시킨다.

이미 수년간 유전자 조작 유채를 심어 온 캐나다를 보면, 밭에 한 번 유전자 조작 유채를 심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주위의 모든 유채가 유전자 조작 유채가 된다. 그래서 지금 캐나다에는 더 이상 유전자 조작이 아닌 일반 유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외치는 유전자 조작 농부들 덕에 오히려 유채를 심던 캐나다의 일반 농부들, 유기농 농부들의 선택의 자유는 모조리 박탈 당했다. 이미 이러한 참상을 경험한 한 캐나다 농부는 독일은 자국을 상대로 또 다른 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한다.


긴드렉 벡, 그 후


▲ 밭에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베어내고 있는 참가자들  2006 ⓒ Jörg Müller

신경써서 유기농 농산물을 사먹지 않는 한, 우리는 도처에 있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반 소고기와 유제품은 거의 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사료로 해 키운 소에서 나온 것이다. 가공된 식품의 경우 독일에서는 가공 후 남아있는 유전자 조작 물질이 0.9% 이하면, 우리 나라는 3% 이하이면 '유전자 조작 식품'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우리는 대대적인 실험용 쥐가 되어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아직은 상업적인 용도의 유전자 조작 농작물을 키우는 밭과 농부가 없지만, 독일에서는 다국적 종자회사들의 지원에 힘입어 이들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게 여기 저기서 일어나는, 긴드렉 벡과 같은 유전자 조작 반대 운동과 참가자들 덕에 그나마 아직은 선택의 여지가 있고,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


▲ 긴드렉 벡(Gendreck-Weg)의 로고
ⓒ Gendreck-Weg

하지만 직접 시위에 동참하는 것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슈퍼에서, 마트에서 물건을 살때 유전자 조작 식품의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고, 수입산이 아닌 국산을 이용하거나 유기농 농산물을 이용하는 것 역시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는 기본적이고도 커다란 힘이 된다.

"Wenn Unrecht zu Recht wird, dann wird Widerstand zur Pflicht(불의가 정의가 된다면, 우리는 이에 저항할 의무가 있다)"

어느 시위 참가자의 손에 들린 피켓에 적혀 있던 글이다.
 
덧붙이는 글 | Gendreck-Weg 홈페이지: http://www.gendreck-weg.de

2006년 8월 ohmynews에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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